선배가 불쑥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꺼냈다. ” 어제는 이이가 갑자기 그러더라. 우리도 장지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난 매장 안한다 했다, 그냥 재를 뿌리라 했더니.. 여기서는 그것도 쉽지 않은 가봐.. 이제 구체적인 죽음을 준비 해야겠다고. 애들이 부모 생각 나면 가볼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 면서 .. 뭐 사실 이 넓은 땅덩더리에 앞으로 아이들이 어디에서 살지도 모르는데 말야. 어쨋든 이미 장례식에 부를 찬송가는 정해놨데.  세가지 할렐루야 헨델  모짜르트 베토벤 ㅎ.

“아이구 선배님 그 연세에 무슨 장지 얘기예요? 남들이 들으면 욕해요”. 선배의 느닷없는 “죽음” 준비 주제는 최근에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요시코: 나도 곧 죽겠지. 민폐 안 끼치고 갑자기 휙 가는게  본인도 주위도 편하다고들 하는데, 그거 다 거짓말같아.
네 아버지가 그랬잖니….가끔 꿈을 꿔. 아주 가끔. 꿈이 너무 생생해. 그래서 네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 처럼 느껴져…….빨리 안 떠나면서 오래 누워 지내는 것 하고 갑자기 죽어서 계속 꿈에 나오는 것 하고 어떤게 나아?

“태풍이 지나가고”는 한 중년 남성의 너무도 늦어버린  루저 인생에 대한 이야기 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대를 막론한 ‘아버지’에 대한 존재론과,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성가신 존재인 “가족”의 관계와 상실. 한마디로 죽음과 이별을 포함하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한 눅눅한 체념이 묻어 있는 영화다.

예나 지금이나 오랫만에 친구와 통화를 할 때 무심코 이런 농담을 주고 받는다. “야 이러다가 내 장례식에서 보겠다. 죽기 전에 한번은 봐야 되지 않겠냐?” 며 킬킬 댄다.

죽음이라는게 늘 우리 곁에 있다고는 하지만 낯설은 단어다. 직접 경험해 보거나 경험담을 들어 본 적이 없으까. 막연하게 특별한 사고가 없으면 때가 되면 가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언젠가는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본다. 인류가 유일하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인간 존재의 공통조건 때문 이라는 것을 날마다 일깨워준다.

선배는 차값을 지불하며 ” 죽기 전에 또 보자”.했다. 나도 받아쳤다. “그러면 매우 자주 뵙게 되겠는데요. 무지기로 오래 사실거 아녜요 ?ㅋㅋ선배는  반색하며 답했다. “당연하지,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살건데. ” 하하하.

♬ 깊이 , 바다보다 더 깊이 푸르게 , 하늘보다 더 푸르게 ♬  라디오에서 나오는 등려군의 ‘이별의 예감’ 후렴구를 놓고 료타 어머니는 주절거린다. “난 평생 누군가를 바다보다 더 깊이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넌 그런 적 있니?” “나? 나는 그런대로” “없을거야 보통사람들은.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 날마다 즐겁게. 그럼 그런 적 없어서 살아갈 수 있는거야. 이렇게 하루하루를 그래도 즐겁게” “복잡하군 …” ” 단순해. 인생이란 거 단순해….나 지금 엄청 멋진 말 했지?”

영화 제목 처럼 Laura 태풍이 사라지고 평온하다. 언제든 또 우리곁을 찾아오겠지만. 그럼 그때 흔들리면 된다. 심플하게.

등려군의 이별의 예감 – 90년대에 “낮에는 등소평을 듣고 밤에는 등려군을 듣는다” 했을 정도로 중국 해빙의 상징이였다. 42살의 나이에 요절.


하나레구미의  심호흡 . 태풍이 지나가고 주제곡으로 영화 마지막을 장식한다.

줄거리: 료타(아베 히로시)는 한때 문학상을 받은 촉망받는 작가였으나 지금은 15년째 차기작 구상을 핑계로 사설탐정 일을 하는 인물이다. 사설탐정 일로 번 돈은 경륜이나 파친코 등에 써버리는 철이 아직 덜 든 어른이다. 부인 쿄쿄(마키 요코)와 이혼하고 혼자서 살고 있다.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는 쿄쿄와 동거한다.

료타의 도박 중독과 결혼생활의 파탄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반년 전에 유명을 달리한 료타의 아버지는 극중에서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가족에게도 소홀한 인물로 그려진다. 료타는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닮아갔다. 료타의 어머니인 요시코(키키 키린)도 50년간 동고동락한 남편이 죽은 것에 속이 시원하다고 하면서도 종종 남편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료타는 쿄쿄와 이혼했지만 아직 그녀를 향한 마음이 남아 있다. 전 부인의 사생활을 염탐하며 어떻게 사는지 지켜본다. 한달에 한번 아들을 보는 날 료타는 아들 싱고를 데리고 자신의 어머니 요시코(키키 키린)가 사는 연립아파트로 간다. 싱고가 할머니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다.

쿄코가 싱고를 데리고 가야 할 저녁이 되자 태풍이 북상해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친다.결국 쿄쿄와 싱고, 료타, 요시코는 한 집에서 자게 된다. 그러면서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간의 입장을 확인한다.

Author mscom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