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 없이 이어령 저<문장대백과사전>이라 답하겠다.  만약 이 책이 없었더라면 작가나 PD 없이 혼자서 일당백 해야 하는 뉴욕의 열악한 방송국 환경속에서 어떻게 방송을 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 하다.

이민 올 때  제일 먼저 챙겼던 1969년판 문장대백과사전은 70년대 후반에 우연히 청계천 헌책방에서 당시에 거금 8,000원을 주고 산 귀하디 귀한 책이였다. 봄’에 관해 찾으면 봄과 관련된 동서양의 유명 시인의 시구부터 세시풍속에 이르기까지 방송원고를 쓰는 데 필요한 잡다한 지식이 거기 있었다. 컴퓨터는 고사하고 날자가 지난 2~3일치 한국신문이 우편으로 배달 되던 8,90년 시대에 <문장대백과사전>은 구글이고 유튜브였다.

2002년 4월. 이어령 선생 뉴욕방문 초청 강연에 사회를 보았는데 그때 “나의 방송 상비품은 문장대백과사전이였다”고 고백했다. 선생은 뉴욕에서 그 사전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반갑다고 하셨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한 2008년 8월29일에 선생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주제는 소설집, 평론, 문화비평 등100여권이 넘는 저작 중 유일한 단 한 권의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 대하여.

이어령 선생이 별세 했다는 소식에 오래된 인터뷰 화일을 꺼내 듣는다.

정말 그럴 때가 / 이어령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거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 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 봉투에 적은 수신인들의 이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말소리들은
지금 모두 다 어디 있는가.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이 있기라도 했었는가.

그런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떨어진 단추에 대하여
빗방울에 대하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얼마전 화재로 더 이상 상비 할 수  없게 된 문장대백과사전에 들어 있는 문장 하나.’내가 만약 신이었다면,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배치했을 것이다’.<A. 프랑스>.  청춘에도 청춘, 노년에도 끝내 지성 청춘이셨던 이어령 선생. 함께 찍은 소중한 그러나 지금은 불에 타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는 사진과 문장대백과사전의 부재가 ‘노엽고 외롭다‘.

*위 사진은 중고책을 판매하는 대영서점에서 이미지를 가져왔다.

Rod McKuen /  And To Each Season :
밥 딜런, 레너드 코엔과 함께 희대의 음유시인이라 평가받는  로드 맥퀸의 이 곡은  파헬벨의 캐논을 편곡하고 직접 쓴 시로 가사를 만들었다.

” 각 계절별로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요. 라일락 , 붉은 장미. 하얀 버드나무. 돈 많은 젊은이들 잊혀진 노인들 // 내일은 오겠지.우리가 있든 없든. 그러니 우리 약속해요. 여기서 다시 만나겠다고. 따뜻하게 잠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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