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필덕후다. 이 덕후눈에 조성모 화백의 연필 조형물시리즈 사진이 포착됐다. 뽀족한 대형 노란 미제 몽당연필이다. “뾰족한 연필은 슬프다”고 표현 했던 은교의 이적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린시절 우리집의 훈육담당은 삼촌이였다. 삼촌은 엄격하게 성적표 부터 학용품 까지 다 관여 하셨다. 새 연필과 공책 구입에는 규칙이 있었다. 공책은 마지막 페이지 까지 글씨를 다 써서 빈 곳이 없어야 하고, 연필은 삼촌이 연필의 끝 부분을 뺀찌로 꾹 눌러 톱니자국이  난 곳이 손으로 연필을 잡았을 때 안 보여야 했다.

미제 HB2 노란연필이였다. 잘 부러지지도 잘 닳지도 않는 고집불통의 노란연필.  언니들은 열심히 글씨를 써서 뺀찌 자국자리 까지 갔지만 나는 큰 수고없이 연필심 겨루기로 몽당연필을 만드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당시 국산 문화연필은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친구의 연필심을 뚝뚝 부러 뜨리는 노란 강대국 미제 연필!. 승리의 보상은 불쌍하게 희생된 친구의 연필이다. 고로 난 삼촌의 뺀찌마크 연필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연필은 내게 있어 라이너스의 담요와도 같다. 필기 할 일이 없어도 가방에는 필통 가득 연필을 넣고 다녀야 안심이 된다. 무엇보다도 새 연필이 생기면 기분이 좋다. 최근엔 오노 요코가 평화를 테마로 특별히 제작한 푸른색 PEACE IS POWER 연필을 모나 뮤지엄에서 사서 쓰고 있는데 스케이트 타듯 잘 나간다. 유리 연필통에 여유있게 연필을 담고 마치 대통령이 중요한 문서에 사인을 할 때 처럼 이것 저것 바꾸어 가며 쓴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연필심 특유의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종이의 결을 밀고 나갈때의 그 은밀한 생동감. 연필 끝에 붙어 있는 지우개로 언제든지 틀린 부분을 지울 수 있다는 안도감. 연필심이 뭉툭할 때 일수록 신나게 써지는 생각. 바닥에 부딪치면 연필깍기를 들이밀며 용기를 주는 연필.


화가 조성모작 :The Last Pencil on Earth (Subtile : Do it well when it is being.)

오늘 조화백의 노란 연필 작품 사진을 보다가 궁금해졌다. 왜 미제연필은 거의 다 노란색이지? 이제서야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1890년 중국산 최고급 흑연으로 연필심을 만들기 시작한 제조 회사들이 중국제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중국에서 노란색이 왕권과 존경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 한 것. 즉, 중국제는 좋은 것. 코로나 이후 중국제에 대한 경멸심과 경계심으로 가득찬 지금의 미국시선으로 보면 매우 천진난진한 발상 이였다

기록에 대한 인류의 갈망이 만들어낸 연필. 한그루의 시더 나무가  무려 67만 5천자루이상의 연필로 재탄생 하는 것 처럼 내 손에  섹시하게 안긴 푸른색 연필은 뺀찌 삼촌이 상상도 못해 본 나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은교’의 이 장면. 연필을 깍는다는 것은?


연필하면 역시 이 노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 전영록

Author mscom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