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에  70년대 후반 부터 쭈욱 사셨다는 터줏대감이 계시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으나 족히 80은 넘으신 것 같다. 그는 시계처럼 오후 5시 20분 쯤이면 우리집 앞을 지나 동네 한바퀴를 여유있게 걸으신다. 폭우폭설 같은 거친 날씨를 제외 하고는 날마다 동네 골목에 얼굴도장을 찍으신다.

그 시간은 아침에 출근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때인지라 자동차들의 들락거림이 잦다. 차가 들어올 때 마다 그는 불안한듯 뒤를 돌아보며 한 켠으로 물러서곤 한다.

영감님은 한가한 낮 시간을 두고, 왜 차들이 많은 퇴근 시간을 택해 걷기 운동을 하시는 걸까?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백발이 된 머리.
그 연세에도 물구나무를 계속 서시네요.
정말 괜찮으신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아들아! 내가 젊었을 때는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를 다칠까 겁이 났단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가 텅 비었으니
계속하고 또 하게 되는구나.”
아버지 윌리암이 아들에게 말했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살도 많이 찌셨어요.
그런데 여전히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집에 들어오시니,
정말 왜 그러시는 건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아들아! 내가 젊었을 때는 팔다리가 무척 유연했지.
바로 이 연고를 써서 그랬단다. 한 상자에 1실링인 연고란다.
너도 한 상자 사 두겠니?”
현명한 아버지 윌리엄은 백발을 휘날리며 말했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턱이 많이 약해져 비계보다 질긴 음식은 무리잖아요.
그런데 거위를 통째로 다 드셨더라고요.
세상에, 어떻게 그러신 건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내가 젊었을 때는 법을 공부해서
네 엄마와 매일 논쟁을 벌였지.
그 덕분에 턱 근육이 단단해져
이제껏 버티고 있는 것이란다.”
아버지 윌리엄이 말했네.


아버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눈도 예전 같지 않으실 텐데
콧등에 뱀장어를 세우고 균형을 잡으시다니
어쩌면 그렇게 재주가 좋으신가요?”
젊은이가 말했네.

“네가 벌써 세 가지 질문을 했으니, 이제 끝이야.
잘난 척은 그만하라고.
내가 하루 종일 네 얘기에 답을 해 주어야 하는 거니?
당장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계단 밑으로 걷어차 버릴 테다!”
아버지 윌리엄이 말했네. < *늙으셨군요, 아버님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사진:wired )

코로나 이후에 모노드라마 처럼  홀로 묻고 ‘라테는 말이야’로 답하는  ‘늙으셨군요 아버님’ 이 늘어나고 있다.

불효자는 웁니다가 아니라 ‘불효자는 옵니다’ 시대에 자식들 얼굴 보기가 전 같지 않다. 시니어센타는 문을 닫고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게다가 때는 바야흐로 가을.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 깊어지는 외로움에 스산하기 까지 하다.

하나를 뜻하는 ‘외’의  외로움이 나의 왼손 같다. 오론손에 비해 활동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왼손은 늘 오른손을 부러워한다.

오른손이 “내가 젊었을때는’ 화려한 균형 감각을 가진 풍요로움이라면 왼손은 “당신은 이제 늙으셨어요” 쇠락하는 궁핍 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와 대화하듯 가끔씩 혼자 중얼거리며 복잡한 퇴근시간에 동네를 걸으시는 우리 동네 터줏대감님의 얼굴에서 아버지가  읽힌다.

9월이 저물어간다. 그러고 보니 9자도 왼쪽을 향해 서 있는 홀수네.


Roy Clark / Yesterday When I Was Young : 샤를르 아즈나부르가 작사작곡한 샹송(아래)
로이 클락이 불러 대히트를 친곡. . 로이클락은 만돌린 기타 벤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칸츄리송 가수. 지나간 세월을 돌아 보는 이 곡은, 1995년 MVP를 3회나 수상한 뉴욕 양키스의 4번타자 Mickey Mantle의 장례식장에서 로이 클락이 불렀다. 자기의 인생 같다 며 자신이 죽으면 이 노래를 장례식에서 불러 달라고 로이 클락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Charles Aznavour / Hier encore :  원곡 제목은 ‘지금도 어제 같아라’ 


The Zombies /time of the season: 영국의 록밴드.  ‘너의 아버지 나처럼 부자야? 네가 살기 위해 필요한 걸 언제든 보여줄 수 있어?” 흥미 있는 가사와 중간에 보컬이 공기를 머금고 내는 ahhh 소리가 독특한 곡.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안에은 여러 편의 시와 노래가 삽입되어 있는데 대부분 당시 유명한 노래나 시를 패러디 했다. 위의 시는 ‘ 제5장 `애벌레의 충고’에 등장하는 시로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 * 로버트 사우디의 `노인의 평안은 어떻게 얻었나  (The Old Man’s Comforts and How He Gained Them)를 패러디한 것.

Author 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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