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 록웰 Norman Rockwell의 익살스런 여름풍경이 할아버지를 소환했다. 삼베 한복을 입고 무궁화 같은 울긋불긋한 꽃이 그려진 낡은 부채를 들고 다니셨던 할아버지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오후면 나를 불러 등목을 시키셨다. 손녀 딸 앞에 비굴하게 엎드려 뻗쳐 벌 받는 자세가 되신 할아버지는 꼭 한마디 하셨다 “물 붓는다고 먼저 말하고 부어라.”

등목의 재미는 엎드린 사람을 놀래키는데 있다. 원래 등목을 시작할 때는 우선 쨀끔쨀끔 물을 뿌리며 손바닥으로 등을 골고루 적신 다음에 물을 부어야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는게 재미 있어 예고편 없이 찬물 한바가지를 촤악 뿌려버린다. 그러면 물이 허리춤까지 내려와 바지가 다 젖는다. “앗 차거, 이눔아 할애비 심장마비 걸리겠다.”

남동생에게 해주는 등목은 두배의 재미가 있었다. “엉덩이 올려 팬티 다 젖는다. 더 올려 더 더. 고개는 들고 코에 물 들어 간다 ” 어린 동생이 엉덩이를 힘껏 올리면 기습적으로 얼음장 같은 물을 뿌린다. 그 물이 얼마나 차가우면 동생은  반사적으로 일어선다. 아잉~ 말을 하고 뿌려야지 라며 찡얼대면 ‘잔말 말고 빨리 엎드려’ 하며 등짝을 ‘짝!’ 스매싱 한다. 더우면  언제라도 물이 있는 수돗가 근처에서 웃통을 훌렁훌렁 벗고 시원하게 등물을 할 수 있는 남자들의 대한 통쾌한 한 방이라고나 할까? 마당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야 끝났던 등목.

호젓한 호수에 들어가 얼굴만 내놓고 더위를 식히는 미국 새일즈맨의 표정이, 등으로 물이 떨어질 때 마다 “어, 시원해! 어, 시원해!” 추임새를 넣으셨던 장완길 할아버지와 똑 닮았다. 우리 할아버지도 어느해 여름, 인적이 드문 허름한 냇가에서 가장의 부담을 ‘풍덩’ 벗고 세상사 시름을 식히셨을까?.


Salesman In Swimming Hole(1945)

Author 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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